발길을 따라 175

전남 영암. 평산신씨. 죽림정사(竹林精舍)

영암. 죽림정사(竹林精舍) 죽림정사는 평산신씨 둔덕종회가 2009년에 중건하였으며 평산인 영계(榮溪) 신희남(愼喜男: 1517~1591) 선생을 비롯하여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던 강학소이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최고 명필 한호(韓濠) 한석봉(韓石峯)이 이곳 죽림정사에서 영계 신희남 선생을 스승으로 글씨를 배웠다고 한다. *소재지: 전남 영암군 영암읍 둔덕길 66 (농덕리 527-1) 죽림정사는 농덕리 둔덕마을의 가장 윗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2009년에 중건하여 건물 자체가 말끔하다. 죽림정사(竹林精舍) 죽림정사 현판과 주련. 죽림정사 현판. 주련. 주련. 죽림정사 중건기. 죽림정사(竹林精舍)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있었다. 이곳에서 영계(榮溪) 신희남(愼喜男: 1517~1591) 선생을 비롯한 ..

발길을 따라 2024.04.22

전남 영암. 전주이씨. 소호사(蘇湖祠)

소호사(蘇湖祠) 전주이씨 사우. *소재지: 전남 영암군 서호면 성재리 625 (서호로 881-5) 영암군 서호면 성재리는 풍수지리학적으로 성인이 태어날 명당지라 하여 성재(聖才) 또는 성재동(聖才洞)이라 하였다. 성재마을에는 전주이씨 문중의 집회소로 쓰이기 위해 1919년에 지은 취모재(翠慕齋)가 자리하고 있다. 1992년에 삼문, 1994년에 취모재를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암에 거주한 전주이씨 문중 재실 겸 집회소로 근대기의 향촌사를 알 수 있다. 취모재에서는 출판 활동도 이루어져 1936년에는 이병태(李炳兌)의 주도로 전주이씨 완창대군파보(全州李氏完昌大君派譜)가 간행되었다. 현재 취모재는 전주이씨 문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는데, 건물의 보존 관리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문화재로는 전주이씨..

발길을 따라 2024.04.19

전남 영암. 이천서씨. 소호정(蘇湖亭)

영암. 이천서씨(利川徐氏) 소호정(蘇湖亭) *소재지: 전남 영암군 서호면 쌍풍리 880-1 (서호로 545) 소호정(蘇湖亭)은 영암군 서호면 쌍풍리 신풍 마을 입구에 있는 이천서씨(利川徐氏) 문중의 정자이다. 이천서씨의 신풍 마을 조성은 조선 후기로만 알려져 있고 자세한 내력은 전해 오지 않는다. 오른쪽에는 최근에 벽돌로 지은 마을회관이 있고 바로 앞에는 차도가 있다. 소호정은 조선 선조 代부터 광해군 代에 활동했던 찰방(察訪) 서희노(徐希怒)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뒤 정자는 소실되어 초석만 남아있던 것을 1978년에 후손 서용신(徐鎔新)이 지금의 모습으로 새롭게 중건하였다. 소호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정자다. 내부는 모두 우물마루 구조로 되어 있고, 사면은 낮은 평난간이 설치된 개..

발길을 따라 2024.04.15

전남 영암. 천안전씨. 수래정(修來亭)

수래정(修來亭) 천안전씨 정자. *소재지: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 470-1. 수래정(修來亭)은 천안전씨(天安全氏) 문중의 정자로서 천안전씨는 전사민의 강진 유배로 처음 영암지역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이후 그의 5세손인 전승문(全承文)이 1504년(연산군 10)에 이곳 영암으로 이주하면서 주로 엄길 마을을 중심으로 천안전씨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후손 중에는 전광택[?~1819], 전광정[1754~1809], 전영택[1776~1835], 전종행[1788~1835] 등 거의 동시대에 활동했던 4인이 제일 학덕이 뛰어났고, 수래정 또한 이들과 관련이 있다. 수래정은 정자 내부에 걸려 있는 '수래정기(修來亭記)'가 갑술년(甲戌年)에 쓰인 것으로 보아 1814년(순조 14)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

발길을 따라 2024.04.12

전남 영암. 김해김씨. 삼효문(三孝門)

김해김씨 삼효문(三孝門) *주소: 전남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257-1.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257-1번지에 자리하고 있는 삼효문은 김해김씨 사군파 양문공 김완 장군의 10世孫이신 성린공(成鱗公)의 영모각(永慕閣), 정묵공(正默公)의 실적비각, 상윤공(相奫公)의 삼효각으로 효행 삼효 정려문이다. 고종 24년(1887년)에 성린에게는 증가선대부 호조참판겸 동지의금부사로 명(命)하고 영모각을 하사하셨으며 차자(次子)인 정묵에게는 가선대부 행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을 증직하여 1920년에 문중에서 실적비각(實跡碑閣)을 세웠다. 부자(父子)가 부모님께 백행지원(百行之源)의 으뜸인 지극한 효행의 징표이며 쌍효자(雙孝子)라 하였다. 조카인 상윤은 부모님 병환에 초산어수(樵山漁水)로 약을 구하여 자신의 몸을 대신하기..

발길을 따라 2024.04.05

전남 영암. 존양루(存養樓)

영암 존양루(存養樓) *주소: 전남 영암군 덕진면 영보정길 16-5. 전남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1구 내동부락 436번지에는 존양루(存養樓)와 존양당(存養堂)이 자리하고 있다.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학맥을 이은 조선 초기 호남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로 예문관직제학(종3품)에 재직 중 68세 되던 1450년(문종 2) 남원부사를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 1384-1455)가 영보촌(永保村)에서의 은둔생활을 시작하면서 학문연마와 후진양성을 목적으로 건립했다. 존양당(存養堂)은 최덕지의 또 다른 호(號)로 이를 따 정명(亭名)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존양(存養)은 존심양성(存心養性)의 약자로 유가(儒家)의 심성 수양론을 대표하는 말이다. 최덕지가 평소에 맹자(孟子) 제7편 진심장구..

발길을 따라 2024.04.03

전남 영암. 문화류씨. 충효정(忠孝亭)

영암. 충효정(忠孝亭) 문화류씨 정자.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는 문화류씨 사우 죽봉사와 정자 영팔정을 비롯하여 충효정이 자리하고 있다. *주소: 전남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418 (모산구만동길 12) 류공신(柳公信: 1579~1655)은 모산리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문화(文化)이고, 호는 송계(松溪)입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6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면서 사친곡(思親曲)을 지어 불렀다고 합니다. 류공신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596년에 모산리에 효열각을 세우고 분수동[현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와운리 분수 마을]에 류공신 효자비(柳公信 孝子碑)를 세웠습니다. 1623년에 정려가 내려졌으며, 1631년에 충효 현판이 걸렸습니다. 그 뒤 류공신은 1643년(인조 21)에 문중 사람들과 분비재(..

발길을 따라 2024.03.29

전남 영암. 해미곽씨. 충효사(忠孝祠)

해미곽씨. 충효사(忠孝祠) *주소: 전남 영암군 학산면 묵동리 245 (묵동길 75-5) 충효사(忠孝祠)는 해미곽씨(海美郭氏)의 문중 사우로, 한벽당(寒碧堂) 곽기수(郭期壽)[1549~1616], 현주(玄州) 곽성구(郭聖龜)[1606~1668], 남계(南溪) 곽제화(郭齊華)[1625~1675)를 배향하고 있다. 곽기수는 1579년(선조 12) 진사과에 합격하였고, 1583년(선조 16)에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예조 좌랑, 부안 현감 등을 거쳤다. 부안 현감에 재직하던 중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곽성구는 곽기수의 손자로, 1631년(인조 9)에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지평·장령·정언·필선·헌납 등을 거쳤으며, 여산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다. 문집으로 『현주..

발길을 따라 2024.03.27

전남 영암. 낭주최씨. 국암사(國巖祠)

국암사 외삼문(광덕문) *소재지: 전남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길 18.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서호정 마을의 영암 도기 박물관 옆으로 '국암서원 & 국사암 입구'라고 쓰인 표지석을 따라 20m 정도 가면 국암사가 나온다. 국암사(國岩祠)는 1972년에 세워진 낭주 최씨(朗州 崔氏)의 문중 사우로, 최지몽(崔知夢)[907~987], 최안우(崔安雨)[1361~?], 최진하(崔鎭河)[1600~1673], 최몽암(崔夢?)[1718~1802]을 배향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낭주[영암의 옛 이름]를 본관으로 하며, 영암 지역에 거주하였던 인물들이다. 최지몽의 원래 이름은 최총진(崔聰進)이다. 최지몽은 경사(經史)· 천문(天文)· 복서(卜筮)에 능통하여, 고려 태조가 꿈을 풀이하도록 하였다. 태조의 꿈 이야기..

발길을 따라 2024.03.15

전남 영암. 함양박씨. 간죽정(間竹亭)

함양박씨. 간죽정(間竹亭) *소재지: 전남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403 (죽정서원길 19) 간죽정(間竹亭)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亭子)로서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 1418~1487)이 1479년(성종 10)에 관직에서 물러나 처(妻)의 고향인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구림 마을에 정착하면서 세운 정자이다. 박성건은 간죽정에서 인근의 선비들을 교육하였다. 간죽정은 창건된 뒤 1571년(선조 4), 1768년(영조 44), 1899년(고종 36), 1970년 총 네 차례 중수되었다. 지금의 모습은 1970년에 중수된 것이다. 간죽정은 3m 정도의 잡석 축대 위에 정동향으로 자리하고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졌다. 간죽정 안에는 창건자 박성건이 지..

발길을 따라 2024.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