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개남 4

전북 정읍.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손화중 장군 묘역.

동학농민혁명군 지도자 손화중 장군 묘역. *주소: 전북 정읍시 상평동 산 134.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손화중(孫華仲) 장군. 전라북도 정읍의 지주 집안 출신으로 20대에 동학교도가 되었다. 온화한 성품으로 도술을 부린다고 소문이 나서 그의 부대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렸다. 우금치 전투가 실패로 끝난 후에 잔여 부대를 이끌고 광주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고, 고향에 숨어 있다가 관군에 체포되어 전봉준과 함께 처형되었다.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손화중 장군 묘. 1895년 3월 29일(양력 4월 23일) 교수형에 처해져 35세 나이로 최후를 마쳤는데. 시신을 거두지 못하였다. 이 묘는 빈 허묘(虛墓)로 1996년 후손 손홍렬 등이 조성하였다. 배우자와 합장된 묘 앞의 비석. 갑오총령 밀양손공 화중선생..

동학 유적지 2022.12.06

전북 정읍. 동학농민군 영솔장. 최경선 장군 묘역.

최경선 장군 묘역(崔景善 將軍 墓域) *소재지: 전북 정읍시 칠보면 축현리 31-1. 5대 동학 장군(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김덕명, 최경선) 중에 '생묘(生墓)' 남긴 장군은 동학농민군 영솔장(領率將)이었던 최경선과 김덕명 장군뿐이다. 최경선은 김덕명 등과 더불어, 전봉준·손화중·김개남 다음으로 가는 동학농민전쟁의 최고 지도자였다. 그는 전봉준과 각별한 사이였을 뿐 아니라, 농민전쟁 전시기에 걸쳐 운명을 함께 한 동지였다 그는 농민전쟁이 일어나기 5,6년 전부터 전봉준과 서로 마음을 터놓고 지낼 정도였다. 최경선이 약방을 했고, 약방을 하면서 동네사람들이나 가난한 농민들에게 약을 지어주었는데, 전봉준도 한때 약장사를 했다는 말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최경선 역시 약방을 운영하면서 농민들과 고통을 함..

동학 유적지 2022.12.03

전북 정읍.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주소: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 (하학리 11-1) 동학농민혁명 기념관. 동학농민혁명 기념관은 동학농민군의 최초 전승지인 황토현전적지(사적 295호)내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2에서 2004년 5월 11일 개관한 기념관이다. 전라북도청에서 관리사업소를 두고 관리·운영해 오다, 2011년 1월부터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이 관리·운영하고 있다. 1894년 반부패·반봉건·반외세의 기치를 들고 봉기한 전봉준·김개남·손화중 등 수만의 無名동학농민군이 전주감영에서 파견한 관군을 크게 이긴 최초의 전승지로, 향후 고부민란이 동학농민혁명으로 나아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성지로 이를 추모 및 기념하기 위한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역사상 최초의 농민봉기탑인 갑오동학혁명 기념탑과 ..

동학 유적지 2022.11.28

전북 고창. 전봉준 장군 생가터

전봉준 장군 생가터 전경.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되어있다. *주소: 전북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59 (당촌길 41-8) 동학농민혁명 지도자 전봉준 장군 생가터 안내판. - 전봉준(全琫準): 1855(철종 6)∼1895(고종 32). 조선 말기 동학농민운동 지도자. - 전봉준 장군의 초명은 명숙(明淑), 호는 해몽(海夢)이다. 몸이 왜소하였기 때문에 흔히 녹두(綠豆)라 불렸고, 뒷날 녹두장군이란 별명이 생겼다. - 아버지 전창혁은 고부 군수 조병갑(趙秉甲)의 탐학에 저항하다가 모진 곤장을 맞고 한 달 만에 죽음을 당하였다. 뒷날 그가 사회개혁의 큰 뜻을 품게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 전봉준 장군은 반외세를 외치며 거병(擧兵)했으나 밀고를 당해 1895년 4월 41세에 서울에서 교..

동학 유적지 2022.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