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유적

전남 장흥. 회령진성(會寧鎭城)

백산. 2022. 10. 27. 09:00

 

회령포(會寧浦)의 결의.

 

명량해전이 눈앞에 닥쳤을 때 장흥 회령포에 당도한 수군통제사 이순신은 전라우수사 김억추 등 관내 장수들과 더불어 최후의 결전을 맹세했다. "나라의 위태로움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우리가 어찌 한번의 죽음을 두려워하랴. 이제 모두 충의에 죽어 나라 지킨 영광을 얻자" 하여 비장한 결의를 다진 수군(水軍) 장수(將帥)들은 격전이 기다리는 우수영바다를 향해 진군했다.

 

 

회령포의 결의상.

 

해남 명량대첩 기념공원에서 촬영. 뒷편에 명량대첩탑이 보인다.

 

 

회령진성 이정표.

회진 시외 버스 터미널 미처 못 가서 삼거리에 세워져 있다.

 

 

*주소: 전남 장흥군 회진면 회진리 999-1 (회령진성길 23)

 

 

회령진성 안내문.

 

회령진성(會寧鎭城)은 성종 21년(1490) 4월에 축조된 만호진성.

 

 

정남진 장흥 회진면 동구마을의 유래는 조선초기 광산김씨 김민경이 바다의 연안에 설기하였고 그 후 창녕성씨 등이 입주하였다고 한다.

 

1490년 성종 21년에 성을 축조하기 시작하여 1554년 명종 9년에 완공하였는데 전라도 우수영의 수군만호가 주둔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 후 경주이씨, 김해김씨 등이 입주하였다.

 

1974년 마을의 규모가 커져서 지자체 분구를 실시하여 그 위치에 따라 동, 서, 남구로 나뉘었다. 장흥 회진면의 동구마을은 동쪽에 위치하여 동구로 정하였고 1986년 4월 1일 대덕면에서 회진면으로 분리되어 회진면 동구리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동구마을이라는 것.

 

 

회령진성(會寧鎭城)

 
1554년대에 둘레 1,990척의 큰 성으로 항시 중선(군함) 4척, 별선(수색함) 4척, 수륙군 472명, 목공(함선수리공) 4명을 포구에 대기시켰고, 성안의 공청으로는 아사청, 객사, 작청, 군관청, 사령성이 있었다.

 

성종 9년(1478) 7월에는 어란과 달량 마도와 회령포 사이에 보를 설치하는 논의가 있었으나 실현되지 않았고 여러 포구의 만호 첨사유진처(僉使留鎭處)에 대한 축성이 논의되는 것은 성종 15년(1484)10월의 일이다.

 

회령포진성은 마을의 뒷산을 이용 축성한 부정형 성으로 이 진성은 현재는 연륙되어있는 덕도와 노력도, 대마도, 대-소대구도 등의 섬들이 외호(外護)하고 있다. 남아 있는 성벽의 총 길이는 616m이며 동벽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축성하였으나, 현재는 모두 훼철되었고 다만 윤중필씨댁 부근에서 동문지(東門址)의 유구만이 확인될 뿐이다.

 

북벽은 현 높이 2.3m~2.5m 너비 1.5m~2m로 150m 길이의 돌로 쌓은 성과 220m 길이의 흙과 돌로 새로 쌓은 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북벽에서는 석축성이 끝나는 이정우씨댁 담장 부근에 너비 2.2m, 길이 122m 정도이다. 남벽은 대부분 훼철되고 길이 40m 너비2~4m 정도의 석축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외 동헌 터와 객사 터 등이 남아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곳 동구마을(당시 회진리)에 위치한 회령진성 부군에서 전선을 지어 왜군을 물리치는데 기여한 곳이라 한다. 특히 백의종군 이후 명량대첩을 이끌어낸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회령진성 성벽.

 

 

회령진성 성벽.

 

 

회령진성 성벽.

 

 

회령진성 역사공원.

 

 

 

회령진성 역사공원 조형물.

 

 

 

역사공원 상징 조형물 안내문.

 

 

회령진성 조형물.

 

이 조형물에는 장흥 회령진성에 대한 설명과 명량대첩에 대한 설명문이 새겨져 있다.

 

 

 

장흥 회령진성에 대한 설명문.

 

 

명량대첩에 대한 설명문.

 

 

회령진성 정자.

 

 

회령진성 위에서 바라본 성벽.

 

 

회령진성 보호수.

 

 

회령진성 보호수 안내판.

 

수령이 약 250년이면 임진왜란 이후에 심은 것으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마을 주민이 심었다고 한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본 정자.

 

회진항(구: 회령포)

 

방파제 끝에 바다로 통하는 뱃길을 이용하여 드나들게 되었다.

 

 

회진항 여객선터미널.

 

 

 

*다녀온 날: 2014년 9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