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유적

전남 해남. 이충무공 영정과 명량대첩 비문 내용.

백산. 2022. 10. 24. 09:00

 

이충무공 영정.

 

- 2015. 05. 28. 현충사 이순신 기념관에서 - 

 

 

 

명량대첩비문.

 

명량대첩비(보물 제503호)를 탁본하여 전시해두었다.

 

 

명량대첩비문 번역본(보물 제503호)

 

 

명량대첩비문 해설본(좌)과 원본(우)

 

 

*2014년 8월 15일(해남 우수영 유물전시관)

 

 

 

명량대첩 비문 내용(번역본)

 

만력25년(1597) 정유 9월에 통제사 이공이 해군을 거느리고 진도 벽파정 아래 진을 치고 왜적들을 명량어귀에서 산산이 무찌르니 적들은 이로 말미암아 크게 패하여 감히 전라도를 엿보거나 경상도 충청도를 건드려 보지 못하다가 그 이듬해에 적이 마침내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니 세상사람들이 나라를 다시 일으킨 공로로는 공을 으뜸이라 하고 또 울도 싸움이 가장 신기 하였다고 이른다.

 

공이 일찍이 전라좌수사로 있을 때 왜적들이 침략해 왔다는 말을 듣고 강개하여 부하들과 맹세하며 영남 쪽으로 진군하여 바다의 적군들을 무찔렀는데 처음 옥포에서 싸우고 다음 당포에서 싸우고 다시 고성 당항포에서 싸우되 언제나 적은 군사로 많은 적군을 무찔러 죽이기 얼마인지 모르더니 마침내 한산바다에서 크게 이기자 그 위엄이 천하에 떨쳐 통제사로 삼도 해군을 모두 거느리게 되었다.

 

눌러 한산섬에 몇 해를 머무르매 적들이 감히 다시 침범하지 못 하드니 이때에 이르러 왜적들이 또 다시 군사를 크게 일으켜 들어와 지난날 패한 일을 거울삼아 분을 머금고 기를 쓰며 바다를 해쳐 바로 올라서려는 것이었다.

 

그 때 공은 바야흐로 모함을 입어 잡혀갔다가 특명으로 평복을 입고 도원사를 따르더니 이윽고 다시 복직이 되었는데 이 때는 원균이 이미 공을 대신하여 많은 군사로 왜적과 싸우다가 마침내 져서 군사와 무기와 군량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한산섬도 벌써 무너진 뒤였다.

 

어허~! 공은 허물어진 뒤를 이어 싸울 군사조차 없으므로 간신히 바다 길을 헤매어 겨우 얼마 안 되는 패전한 군사를 주워 모으고 전선 10여 척을 거두어 드디어 명량을 억눌렀다.

 

적의 배들이 바다를 덮어 오는지라 공은 여러 장수들에게 바다로 나가기를 재촉하고 좁은 목에다 뱃머리를 잇대어 닻을 내리고 흐르는 바다 중간을 끊어 적들을 기다렸다.

 

명량은 목이 좁은데다 조수는 마침 들어와 물결이 더욱 빠른데 적군들이 상류 쪽으로 조수 따라 덮쳐오니 형세는 마치 산이 누르는 것 같아 우리 군사들은 풀이 죽으므로 공은 기운을 더욱 돋우고 기회 따라 쳐부수게 하니 장수들은 죽기를 맹세하였다.

 

전선은 나는 듯 나들고 대포는 사방에서 터지며 바다 물은 뒤끓는데 적선은 불타고 깨어져 물에 빠져 죽는 자 이루 셀 수 없게 되어 마침내 적들은 크게 패하여 달아났다.

 

처음 싸움이 한창 어울렸을 때 거제현령 안위가 뒤로 물러남에 공은 뱃머리에 서서 큰소리로 안위의 목을 자르라 호령하니 안위도 두려워 되돌아들어 날쌔게 싸워 이날 적군의 배를 쳐부순 것이 오백 척이요, 그 장수 "마다시"의 목도 베었다.

 

그 때 남도백성들로 적을 피해 공을 따르는 배가 백여 척인데 싸우기 전에 공은 그 배들을 바다에 벌려 세우고 싸우는 배처럼 꾸미었다.

전투가 벌어지자 배에서 구경하던 이들은 모두 얼굴빛이 질리며 공은 군사가 적으매 응당 패하리라 걱정하였더니 적이 물러가고 싸움이 끝난 뒤에 우리 전함들이 그냥 우뚝 아무 탈 없음을 보고는 모두 경탄하며 달려와 치하하니 이로부터 우리 해군의 위세가 또 다시 크게 떨치었다.

 

저 이일 신립이 패한 뒤로는 관군과 의병들이 적을 만나는 대로 무너지며 적들의 칼날에 맞설 길이 없더니 명나라에서 많은 군사를 보내주어 크게 깨트리니 세 도성도 차례로 수복되고 거기 따라 우리 군사들도 좀 버틸 수가 있었다.

 

연안 행주의 승첩은 비록 한때 훌륭했다고 하나 모두 명나라 군사의 힘을 빌어 겨우 성을 지키고 적을 막았을 분인데 제 힘으로 혼자 한 방면을 당해 내어 모조리 죽이고 큰 승리를 거둔 것은 오직 공만이 한 일이다.

 

그래서 적들이 호남 영남에 진치고 있은 지 예닐곱 해에 감히 서쪽 바다는 한 걸음도 밟아 보지를 못했던 것이다.

남원이 무너짐에 따라 적의 기운은 더욱 세어졌건 만은 그래도 뒤가 무서워 제 뜻대로 다 못했던 것도 어허~ 공 때문이었다.

 

노량싸움에 이르러서는 크게 싸우고 또한 크게 이기었으며 진중에서 운명하여 마침내 몸을 나라에 바치었고 공이 돌아가시자 적도 또한 물러갔다. 그 뒤에 조정에서 적을 평정한 공로를 의논할 제 공으로써 으뜸을 삼아 선무공신의 호를 내리고 좌의정 벼슬을 주고 노량에 충렬사를 세워 제사하게 하였다.

 

공의 이름은 순신이요, 자는 여해, 덕수인이다.

공은 평소엔 차근차근하여 단아한 품이 마치 선비와 같았으나 전쟁에 다 달아 적을 무찌름에 있어서는 계책을 냄이 신기하여 비록 옛날의 명장이라도 이에서 더 할 수 없었으며 또 늠름한 충의는 저 해와 달을 꿰고 귀신까지도 감동하게 함이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반듯이 승첩이 있었으며 위엄은 왜적들로 하여금 무서워 떨게 하였고 의기는 중국을 흔들었나니 공과 같은 이는 그야말로 옛부터 일러오는 "참장군"이라 가히 큰일을 맡을만한 분이요, 다만 한 때의 승리를 들어 훌륭하다고 논할 것만은 아니다.

 

그의 모든 행적과 군사 거느리던 일들은 역사의 몇 많은 사람의 기록에 적어 있거니와 내가 젊어 명량을 지나다가 공의 싸우던 터를 보고 하염없이 한숨쉬며 오래 거닐면서 그의 인격을 상상하여 본 일이 있었던 바 이제 남도 사람들이 그곳에 돌을 세우고 거기에 새길 글을 청하는지라 의리에 감히 사양할 길 없어 드디어 옛날에 들은 이야기를 대강 적고 노래를 이어 붙인다.

 

"울돌목이여 좁을러라  조수 벅참이여 두 골 새로 빠지도다.
군사들 날램이여 북소리 울리는데 적을 무찌름이여 남김없이 휩쓸도다.
오직 장군이여 의와 용맹 갖추시니 바다길 억누름이여 걱정이 끊이도다.
성난 물결 덮침이여 용과 고래 달리는데 싸움터 바라봄이여 영특한 재주 그리도다.
넋이 갸륵하심이여 한 바다에 번듯하매 별들을 꾸짖음이여 바람우뢰 일구도다.
바다 아니 마름이여 돌도 아니 삭을진저 장한 공적 밝히어 그지없이 빛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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