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유적지

전북 정읍. 갑오동학혁명 기념탑

백산. 2022. 11. 30. 06:00

 

갑오동학혁명 기념탑.

 

황토현 전적지에 세워진 이 탑은 제폭구민과 보국안민을 주장하며 일어선
동학농민혁명정신을 기리고 후손에게 길이 전하기 위해서 1963년 10월 3일에
세웠으며 탑 높이 7.5m, 탑신 6.3m, 기단 1. 2m, 둘레 4.64m 규모이다.

 

 

 

*주소: 전북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산 3-5

 

 

 

갑오동학혁명 기념탑.

 

1963년 갑오동학혁명 기념탑 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되어 우리 역사상 최초의 농민 봉기인 갑오동학혁명 정신을 후손에 길이 전하기 위해 세웠다.

 

이곳은 1894년(고종 31년 4월 7일)양력 5월 11일 갑오동학 농민군과 전라 감영군이 최초로 접전을 벌여 전라 감영군이 참패를 당한 관군의 진지이며 농민군이 대승을 하였던 격전지이다.

 


*갑오동학혁명 기념탑에 적혀있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가보리.

 


우리가 익히 불러오던 가사와는 조금 다른 글이 새겨져 있는데 갑오동학혁명이 갑오년에 시작되어 병신년에 끝난 것으로 보아 '가보세'는 갑오년(1894년)을 '을미적'은 을미년(1895년)을 '병신 되면'은 병신년(1896년)을 뜻하는 것으로 병신년이 되면 뜻을 이룰 수 없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서북쪽 6㎞ 떨어진 이평면 장내리 조소마을에는 갑오동학혁명 당시 전봉준 선생이 살았던 고택이 있고 북쪽 9㎞지점의 이평면 하송리 예동마을 태인천 제방에는 1892년 5월 고부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이 농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기존 보가 있는데도 신보를 막아 보세의 명목으로 농민을 수탈하여 갑오동학혁명의 근원이 되었던 만석보 유지비가 있다.

 

이외에도 갑오동학혁명 기념탑이 있는 아래쪽에는 향토현 전적지에는 구민사, 갑오동학혁명 유적지 기념관과 전봉준 선생 동상과 제민당이 있다.

 

 

- 웹사이트 -

 

 

갑오동학혁명 기념탑.

 

전면 상단부에는 강암 송성용 선생이 쓴 '除暴救民 保國安民'(제폭구민 보국안민)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기단부에는 갑오동학혁명기념탑(甲午東學革命紀念塔)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갑오동학혁명 기념탑 기단부분.

 

 

갑오동학혁명 기념탑 안내문.

 

 

갑오동학혁명 기념탑 명문.

 

 

*갑오동학혁명 기념탑에 적혀있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 밭에 앉지 마라 녹두 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가보리.'

 

 

갑오동학 혁명군의 봉기하는 모습.

 

 

갑오동학혁명 정신에 대한 추모비.

 

 

 

*다녀온 날: 2019년 11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