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 유적지

전북 정읍. 황토현 전적지(黃土峴 戰蹟地)

백산. 2022. 11. 29. 06:00

황토현 전적지(黃土峴 戰蹟地)

 

사적 제295호.

 

 

*주소: 전북 정읍시 덕천면 동학로 743 (하학리 산 3-5)

 

 

 

황토현 전적지(黃土峴 戰蹟地)

 

황토현 전적지는 동학농민혁명 발상지로서 1894년(갑오년) 동학혁명운동 당시 농민군이 관군과의 첫 싸움에서 크게 승리한 싸움터이다.

 

조선 고종 31년 정월(양 2. 17) 전봉준 장군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은 고부관아를 점령하여 학정을 일삼던 탐관오리 고부군수 조병갑을 몰아냈다.

 

그리고 그 해 백산에서 다시 봉기한 농민군은 이를 토벌하기 위해 이곳 황토현에 진을 치고 있던 전라감영의 관군을 4월 7일(양 5.11) 새벽, 기습 공격하여 대승하였다.

 

이곳에서의 승리는 농민군의 사기를 크게 높여주었고 당시 농민들이 외쳤던 제폭구민(除暴救民) 보국안민(輔國安民) 척양척왜(斥洋斥倭)의 혁명정신이 크게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부터 농민군은 그 기세를 몰아 정읍, 흥덕, 고창, 무장, 영광, 장성 등 각 현으로 그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으며 전주성까지 점령하게 되었다.

 

이때 조선침략을 노렸던 청나라과 일본의 군대가 조선에 들어와 국정에 개입하자, 농민군들은 이를 물리치기 위해 정부와 화약(和約)을 맺고 전라도 53개 지역에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하여 스스로 나라와 백성을 위한 개혁정치를 추진하였다.

 

한편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자, 농민군은 9월에 삼례를 기점으로 다시 일어나 전국 각지에서 용감히 싸웠지만 공주의 우금치 전투에서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크게 패하였다.

 

이후 농민군의 세력이 크게 떨어지고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손화중, 김개남, 최경선 등 농민군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순국하게 되자,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부패한 정치를 바로 잡아 정의롭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30여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당시 농민군이 부르짖은 민주(民主). 자주(自主). 평등(平等)의 숭고한 애국애족(愛國愛族)의 정신은 그 뒤 우리민족의 독립운동과 민주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 웹사이트 -

 

 

제세문(濟世門)

 

황토현 전적지를 관람하려면 3개의 문을 통과하게 되는데 제일 먼저 제세문을 들어서게 된다.

 

 

 

 

정읍 황토현 전적 안내도.

 

 

정읍 황토현 전적 안내도.

 

 

정읍 황토현 전적 안내문.

 

 

사적 제295호.

황토현 전적지 표지석.

 

 

황토현 전적지 정화기념비.

 

 

보국문(輔國門)

 

두 번째의 문인 보국문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고 정면에 전봉준 장군 동상이 나타나고

오른쪽에는 기념관이 왼쪽에는 제민당이 자리하고 있다.

 

 

제민당(濟民堂)

 

제민당 안에는 전봉준 장군 영정과 규장각 소장품 동학농민혁명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황토현 전적지 기념관.

 

기념관에는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상황과 동학군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유품으로는 당시 전봉준 장군이 사용하던 붓과 벼루, 패랭이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동학군의 병장기도 볼 수 있다.

 

 

 

전봉준(全琫準, 1855~1895) 장군(將軍) 상(像)

 

본관은 천안(天安), 초명은 명숙(明淑), 호는 해몽(海夢)이다.
몸이 왜소하여 녹두(綠豆)라 불렸고, 뒷날 녹두장군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아버지가 민란의 주모자로 처형된 후부터 사회개혁에 뜻을 품게 되어 30여 에 동학에 입교,
얼마 안되어 동학의 2세 교주 최시형(崔時亨)으로부터 고부지방의 동학접주로 임명되었다.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로서 부패한 관리를 처단하고 시정개혁을 도모하였으며
전라도 지방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동학의 조직강화에 힘썼으며,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가 체포되어 교수형을 당하였다.

 

 

전봉준 장군 상(全琫準 將軍 像)

 

 

구민사 사당 내삼문.

 

마지막 세 번째 문을 들어서면 동학농민혁명 당시 희생하신 영령들을 모신 사당을 접하게 된다.

 

 

 

사당: 구민사(救民祠)

 

동학혁명 100주년이었던 1994년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과 참전 제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2008년 김덕령 등 51명의 위패를 추가로 봉안하였으며, 2009년 5월 동학농민혁명으로 희생된 선열 60명의 위패를 추가하여 봉안하였다.

 

 

내부 촬영을 금지하고 있어 사당 전경만 촬영하였습니다.

 

 

 

 *이곳에서 왼쪽의 협문을 통해서 갑오동학혁명 기념탑으로 갈 수 있다.

 

 

 

*다녀온 날: 2019년 11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