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명리학의 역사.
사주명리학은 인간이 출생한 출생연월이시의 정보를 가지고 여덟 개의 글자를 구성하여 한 사람의 운과 명을 예측해 보는 학문이다.
사주명리학의 기본적인 이론을 고찰해보면 명리학에서 시간관리에 대한 내용도 어느 정도 성격적인 면과 관련이 있다고 보여진다. 성격 발현에 관한 내용도 고찰해보면 마찬가지로 관련성을 보인다.
사주명리학의 역사에 관한 내용은 '명리학정론'의 내용을 참고하면 이해하기 쉽다. '명리학정론'에 따르면 명리학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오늘날과 같은 사주명리학이 발달한 시기는 중국의 당대 이후로 보고 있다. 그 이전에는 사람이 태어난 년주를 위주로 하여 명을 논하였으나 서자평(徐子平)은 일주를 중심으로 명을 논하여 오늘날과 같은 사주명리학을 발달시켰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연월일시 간지를 가지고 시간을 기록한 것은 동한 순재(서기 126년) 이후의 일이다. 당나라 말 송나라 초 이허중(李虛中) 선생은 연주의 납음으로 명을 판단하는 이론을 세웠다.
이허중 선생은 당사주를 만들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서자평(徐子平) 선생은 연주 중심의 사주명리학을 일간 중심으로 판단하는 이론을 창안하여 완성하였으며, 그 후 서공승은 연해와 비결집 연원을 합본하여 연해자평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격국론과 시결론, 신살론 등이 방대하게 수록되어 있고, 초학자가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으나 고전으로서는 훌륭한 지침서 중의 하나라고 평가된다. 명나라 때는 많은 분들이 사주명리학의 뿌리를 튼튼하게 했는데. 그 중 장남(張楠) 선생은 '명리정종'을 저술하였다.
서대승(徐大升) 선생이 지은 '연해자평'의 부족분을 보충하였고 만육오(萬育吾) 선생은 '삼명통회'를 저술했다. 무엇보다도 명나라 개국공신이던 유백온(劉伯溫) 선생은 사주명리학의 보서라 칭하는 '적천수'를 저술했다.
사주명리학이 기틀을 잡고 꽃 피운 청대의 초엽에는 진소암(陳素庵) 선생이 적천수 원본을 추해한 '적천수집요'를 저술하였고 '명리약언'이라는 사주명리학의 요점정리 격인 책자를 남긴 분이다.
진소암은 정승의 벼슬을 지냈으며 청나라 중엽의 심효첨(沈孝瞻) 선생은 자평명서의 3대 보서 중 하나인 '자평진전'을 저술하였다.
심효첨 선생은 건륭4년 서기1665년에 진사에 급제한 매우 똑똑한 학자이다. 이후 건륭 38년인 서기1773년 4월 18일 진시에 출생한 임철초(任鐵樵) 선생은 그가 73세가 되던 1846년에 난해하게 생각했던 적천수에 임상단계를 완료한 명료한 주석을 달아 사주학의 백미라 부를 수 있는 '적천수천미'를 저술하였다.
서락오(徐樂吾) 선생은 1935년에 '난강망'이라는 책에 주석을 달았다. 그 책을 '궁통보감'이라고 부른다. 이후 '적천수징의'를 출간하였는데 임철초의 '적천수천미'에서 진소암 선생의 주석 부분을 삭제하여 새로이 출간하였다. 그 후 '적천수보주'라는 책을 편찬하였다. 또한 '자평수언'도 저술하였다. 이 외에도 원수산(袁樹珊) 선생의 '명리탐원'과 '명보'라는 저술서가 있다.
근대에는 위천리(韋千里) 선생의 '명학강의'와 팔자제요'가 사주명리학의 좋은 책으로 꼽히고 있으며 하건충(何建忠) 선생의 '팔자심리학'도 좋은 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발달해 온 사주명리학의 역사를 인물과 저술서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사주명리학의 이러한 변천사를 살펴보면 사주명리학도 그 이론적인 면에서는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주명리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던 모든 학자가 진지하게 명리학을 대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사주명리학의 발달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에서 주역에 대한 교육이 시작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에 태학이 세워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성균관에서 태조 7년(1398년)에 주역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이런 사주명리학이라는 학문은 일제시대라는 시대적인 변화 속에서 민족말살정책과 더불어 천시되고 소외되는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된다. 하지만 근래 들어 저변 확대와 더불어 인간의 미래 정보라는 가치를 인정받았다. 과학적인 실용 학문으로서 인정받고 발전을 이루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또한 한국 역학의 명인으로 도계 박재완(朴在玩) 선생과 자강 이석영(李錫暎) 선생이 많은 연구와 후학을 양성하여 중국 서적에 대한 의존을 탈피하는 공헌을 세웠다. 이렇게 명리학은 분명한 역사를 가지고 꾸준히 발달해 온 학문이다. 현재의 명리학은 새로운 현대 명리학으로서 거듭남을 추구하는 시기로서 현대적인 감각을 살려 다양한 학문과 연계성을 가진 연구가 필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 정영자, 2008, 사주구조와 시간관리의 효율성 연구, -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
<註>
이 외에도 전국시대~남북조시대에는 낙록자, 귀곡자(鬼谷子)라는 분이 있었고, 한나라대에는 사마계주(司馬季主) 동중서, 동방삭, 엄군평 등이 이름을 남겼다.
삼국시대에는 제갈공명, 관로(管路)가 있었고, 진나라대에는 갈흥, 곽박이 일가견이 있었던 분들이다.
당나라대에는 원천강, 일행, 이필, 이허중 등의 선생이 이름을 남겼으며
송나라대에는 주렴계, 소강절, 서대승 등이 이름을 남기신 분이다.
명나라대에는 유백온, 만육오, 장남이라는 분이 계셨으며
청나라대에는 진소암, 심효첨, 임철초 선생들이 있다.
근대에 이르러 서낙오, 원수산, 위천리, 일본의 아부태산, 오약평, 양상윤, 화제관주, 하건충, 등 기라성 같은 대가들이 모두 명리학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우신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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