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봉 5

전남 영암. 평산신씨. 죽림정사(竹林精舍)

영암. 죽림정사(竹林精舍) 죽림정사는 평산신씨 둔덕종회가 2009년에 중건하였으며 평산인 영계(榮溪) 신희남(愼喜男: 1517~1591) 선생을 비롯하여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던 강학소이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최고 명필 한호(韓濠) 한석봉(韓石峯)이 이곳 죽림정사에서 영계 신희남 선생을 스승으로 글씨를 배웠다고 한다. *소재지: 전남 영암군 영암읍 둔덕길 66 (농덕리 527-1) 죽림정사는 농덕리 둔덕마을의 가장 윗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2009년에 중건하여 건물 자체가 말끔하다. 죽림정사(竹林精舍) 죽림정사 현판과 주련. 죽림정사 현판. 주련. 주련. 죽림정사 중건기. 죽림정사(竹林精舍)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있었다. 이곳에서 영계(榮溪) 신희남(愼喜男: 1517~1591) 선생을 비롯한 ..

발길을 따라 2024.04.22

전남 영암. 전주최씨. 영보정(永保亭) 전남 기념물 제104호.

영암. 영보정(永保亭) 전주최씨 사우. 전라남도 기념물 제104호. (1987.01.15. 지정) *소재지: 전남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296. 영보정(永保亭)은 연촌 최덕지(1384∼1455) 선생이 관직을 떠난 후 영암의 영보촌에 내려가 학문 연구에 몰두하면서 사위 신후경과 함께 지은 정자이다. 최덕지 선생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학식이 높고 행동이 단정하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많은 저서를 남겼으나 불타버려서 한 권만 남아 있고 여러 현인들의 논설만 전하고 있다. 처음 있던 정자는 황폐되어서 최정과 신천익(1592∼1661)이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지었다. 정자는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현판은 한석봉이 쓴 것이라고 전한다...

문화재 탐방 2024.02.16

전남 나주. 쌍계정(雙溪亭) 전남 유형문화재 제34호.

나주. 쌍계정(雙溪亭)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 *주소: 전남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 251번지. 쌍계정은 고려 충렬왕(재위 1274∼1308) 때에 문정공 정가신이 세웠다고 전하는 정자이다. 이름은 정자 좌우로 계곡이 흐르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문정공은 이곳에서 김주정, 윤보와 더불어 학문과 인격을 갈고 닦았는데 이런 이유로 '삼현당'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 뒤 조선 세조(재위 1455∼1468) 때 정서, 신숙주 등 당시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학문연구 장소로 사용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쌍계정과 주변의 오래된 나무들이 풍치있게 어울려 조선시대 대표적 정자로 손꼽히고 있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쌍계정. 쌍계정 현판은 한석봉의 ..

문화재 탐방 2023.12.13

전남 영암. 평산신씨. 죽림정사(竹林精舍)

평산신씨. 죽림정사(竹林精舍) *주소: 전남 영암군 영암읍 둔덕길 66 (농덕리 527-1) 죽림정사는 평산신씨 둔덕종회가 2009년에 중건하였으며 평산인 영계(榮溪) 신희남(愼喜男: 1517~1591) 선생을 비롯하여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던 강학소이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최고 명필 한호(韓濠) 한석봉(韓石峯)이 이곳 죽림정사에서 영계 신희남 선생을 스승으로 글씨를 배웠다고 한다. 죽림정사는 농덕리 둔덕마을의 가장 윗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2009년에 중건하여 건물 자체가 말끔하다. 죽림정사(竹林精舍) 죽림정사 현판과 주련. 죽림정사 현판. 주련. 주련. 죽림정사 중건기. 죽림정사(竹林精舍)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있었다. 이곳에서 영계(榮溪) 신희남(愼喜男: 1517~1591) 선생을 비롯한..

발길을 따라 2023.06.30

전남 영암. 전남 기념물 제104호. 영보정(永保亭)

영암. 영보정(永保亭) 전라남도 기념물 제104호. (1987.01.15. 지정) *주소: 전남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296. 영보정(永保亭)은 연촌 최덕지(1384∼1455) 선생이 관직을 떠난 후 영암의 영보촌에 내려가 학문 연구에 몰두하면서 사위 신후경과 함께 지은 정자이다. 최덕지 선생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학식이 높고 행동이 단정하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많은 저서를 남겼으나 불타버려서 한 권만 남아 있고 여러 현인들의 논설만 전하고 있다. 처음 있던 정자는 황폐되어서 최정과 신천익(1592∼1661)이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지었다. 정자는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현판은 한석봉이 쓴 것이라고 전한다. 영보정은 일제시대..

문화재 탐방 2023.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