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모재 6

전남 나주. 나주정씨. 설재서원(雪齋書院). 전남 문화재자료 제93호.

설재서원 입구 안내석. 뒤쪽으로 설재서원이 보인다. 설재서원(雪齋書院) 나주정씨 사우.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93호. (1984.02.29) 설재서원(雪齋書院)은 설재(雪齋) 정가신(鄭可臣: 1244∼1298)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소재지: 전남 나주시 노안면 영평리 649 (영안길 60) 설재서원(雪齋書院)은 설재(雪齋) 정가신(鄭可臣: 1244∼1298)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서 정가신은 고려 문신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자리를 거쳤으며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하다. 숙종 14년(1688) 노안면 금안동에 세운 이 서원은 숙종 38년(1712)에 향사우로 승격되어 설재서원이 되었다. 경종 3년(1723)에 영안마을로 이전하면서 강당인 영모재를 세웠다. 그 뒤 고종 5년(1868) 흥..

문화재 탐방 2024.01.15

전남 영암. 선산임씨. 임구령(林九齡) 묘소 & 영모재

선산임씨. 영모재 삼문. *소재지: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 345 (선사주거로 129-64) *임구령(林九齡)은 누구인가? 임구령은 임백령(林白齡)의 아우로 을사정난(乙巳靖難)의 공신이다. 그는 몇 해 안 되어 높은 지위에 오르고 당상이 되었다. 또한 그는 이기와 윤원형(尹元衡)을 자기 아버지처럼 섬기었다.(명종실록 1552년 3월19일) 임구령은 해남사람으로 오형제 중에 막내였는데, 그의 형제 이름은 천령, 만령, 억령, 백령, 구령이다. 임구령의 바로 윗형이 임백령이다. 을사사화의 일등공신은 이기와 임백령, 정순붕, 허자이었다. 임구령과 윤돈인, 정현 등은 2등 공신이었다. 임구령은 명종실록에 두 군데 나타나듯이 을사사화 때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영암군 군서면 모정마을은 원래 등성이에 바위와..

발길을 따라 2023.07.12

전남 영암. 창녕조씨. 영모재(永慕齋)

창녕조씨. 영모재(永慕齋) 영모재(永慕齋)는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장선리에 있는 창녕조씨 문중에서 세운 재각이다. *소재지: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장선리 218-1 (정족길 14) 영모재(永慕齋)는 영암군 덕진면 장선리 정족마을의 입구에 있으며, 재각 뒤로는 창녕조씨 문중의 선산이 있다. 1921년 창녕조씨(昌寧曺氏) 문중에서 세운 재각으로 팔작지붕 형태로 정면 3칸, 측면 1칸이다. 매년 4월 첫째 주 토요일에 문중에서 시제를 지내고 있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편이다. 뒤편에 위치한 창녕조씨 문중의 선산과 함께 영모재는 영암에 거주하는 창녕조씨들의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해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영모재 삼문. 영모재(永慕齋) *영모재는 현판이 없다...

발길을 따라 2023.07.08

전남 영암. 여산송씨. 영모재(永慕齋)

여산송씨(礪山宋氏) 영모재(永慕齋) 영모재(永慕齋)는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에 있는 여산송씨(礪山宋氏) 문중에서 세운 재각이다. *주소: 전남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 142-1 (탑동길 18-2) 여산송씨(礪山宋氏)는 고려 시대에 공(功)을 세워 여산군(礪山郡)에 봉해진 송유익(宋惟翊)이 시조(始祖)이다. 본래 여산송씨는 경기도 파주에서 세거하다가 전라북도 옥구로 이거하였으며, 그 뒤 송문형(宋文亨)이 영암으로 이사하였다. 여산송씨의 영암 입향조인 송문형은 시조인 송유익의 16세손이며, 조선 태종 때 충익대좌명공신(忠翊戴佐命功臣) 4등에 등재되었던 송거신(宋居信)의 7세손이다. 여산송씨가 처음 영암에 정착한 곳은 영암읍 학송리였다. 여산송씨는 영암읍 용흥리 새실 마을을 거쳐, 영모재가 있는 용흥리 ..

발길을 따라 2023.07.05

전남 해남.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23호. 죽음사(竹陰祠)

해남 죽음사 표지석.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23호. (2013년 8월 1일 지정) *소재지: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814(남송2길 66-28) 죽음사(竹陰祠)는 청재 박심문(1408~1456)의 위패를 모시고 그이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마련된 재실로 청재 박심문(淸齋 朴心問)은 해남읍 수성리 미산사에 배향되었으나 후손들에 의해 1895년에 현재의 사우로 옮겨졌다. 박심문은 조선 세종대의 문관으로 단종이 폐위되자 사직하여 성삼문, 하위지 등과 교류하다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길에 의주에서 사육신의 처형 소식을 듣고 자결하였다. 1856년(철종) 이조판서에 증직(贈職)되고 1871년(고종 8년)에 충정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우리 지역 문화재 - 해남 죽음사 영모재 (海南 竹陰祠 永慕齋) 해남군..

문화재 탐방 2023.03.22

전남 곡성. 마천목장군 & 충정묘(忠靖廟)

마천목장군 재실(영모재 입구) *소재지: 전남 곡성군 석곡면 방송리 291-2 방주마천목길 135-2. 마천목장군의 본관은 장흥으로 호는 오천이며 장흥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곡성으로 옮겨 와서 살았다. 원래 신체가 강건하고 힘과 무예가 출중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서에도 능통하였다고 한다. 장군이 23세가 되던 해, 고려 우왕 7년에 공직에 발을 들여 놓았으며 37세에는 정7품인 사직의 자리에서 봉직하였다. 이때는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조선조를 세우고 태조가 된지 7년밖에 되지 않아 아직 왕권이 확립되지 못하던 시기다. 왕자들끼리 왕권쟁탈을 위하여 피를 흘릴 때였다. 마천목장군은 [제1차 왕자의 난]에 방원을 도와 공훈을 세워 상장군의 직위를 받았다. 또한 「제2차 왕자의 난」때는 방간의 편에 섰던 박포를..

발길을 따라 2022.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