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문씨 5

전남 영암. 함양박씨. 정려각(咸陽朴氏 旌閭閣)

함양박씨 정려각(咸陽朴氏 旌閭閣)   *소재지: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 494 (마당바우로 114-7)   함양박씨(咸陽朴氏)는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의 후손으로 문규원(文奎源)의 처(妻)가 되어 정성껏 시부모를 봉양하고 종인(宗人)들의 모범이 되었다. 1854년(철종 5)에 박씨가 나주의 친정에 가 있을 때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자, 박씨는 남편의 뒤를 따라 자결을 꾀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슬픔을 참고 정성껏 3년 상을 치렀다. 그 후 목욕재계하고 9일 동안 단식한 끝에 절명하였다. 당시 순상(巡相)이던 서상정(徐相鼎)이 조정에 보고하여 1871년(고종 8)에 나라에서 정려하였다.   - 영암문화원 -   함양박씨 정려각(咸陽朴氏 旌閭閣)  함양박씨 정려각(咸陽朴氏 旌閭閣)  "증 통정..

발길을 따라 2024.05.17

전남 나주. 문바위(文巖)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32호.

나주 문바위 문암(文巖)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32호. 전남 나주시 남평읍 풍림남석길 131-9 (풍림리 634-2) 남평 문씨 시조인 문다성의 탄생 설화와 관련된 바위로, 경사면에 놓여 있어서 앞에서 보면 높이 6m, 폭 5m의 크기로 보이나, 뒤에서 보면 1m 정도로 보인다. 조선 영조 21년(1731)에 쓰인 남평문씨 창간보 『신해보』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호남읍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적혀 있다. 당시 이곳 현감을 지내던 자가 장자연못의 바위 위에서 울고 있는 아기를 거두어 기르게 되었다. 글에 능하다 하여 성을 ‘문’으로 짓고, 사물의 이치를 잘 깨닫는다 하여 ‘다성’이라 이름지으면서, 아기가 있던 바위를 ‘문암’이라 이름 붙여 이 아기를 문씨의 시조로 삼았다. 전설이 비록 신화처럼 신..

문화재 탐방 2024.01.12

전남 나주. 남평문씨. 장연서원(長淵書院)

장연서원 입구의 홍살문. *홍살문은 일반적으로 나무로 되어 있는데 장연서원 홍살문은 콘크리트로 되어있다. 남평문씨. 장연서원(長淵書院) 배향인물: 문다성(文多省) 문공유(文公裕) 문극겸(文克謙) 문유필(文惟弼) 문익점(文益漸) 창건연도: 1734년(영조 10) 향 사 일: (음)9월 중정 *주소: 전남 나주시 남평읍 풍림리 722 (풍림남석길 167-5) *장연서원에서 약 300여 미터 거리에 남평문씨 성씨설화가 깃든 남평 문바위(문암)과 시조단이 있다. 남평문씨 각종 기념비들. 장연서원(長淵書院)은 남평의 대표적 성씨인 남평문씨(南平文氏)의 시조인 무성공 문다성(武成公 文多省)을 비롯함 문공유, 문극겸, 문유필, 문익점 등 다섯 분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이 서원 건립의 유서가 마련된 것은 1734년..

발길을 따라 2024.01.10

전남 나주. 진주강씨 삼강문(晉州姜氏 三綱門)

진주강씨 삼강문(晉州姜氏 三綱門) 전경. 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48호. (2018.03.27 지정) *주소: 전남 나주시 산포면 화지리 172-2. 진주강씨 삼강문 안내판. 진주강씨 삼강문(晉州姜氏 三綱門)은 전라남도 나주시 산포면 화지리 172-2에 있는 진주강씨 삼강문이다. 2018년 3월 27일 나주시의 향토문화유산 제48호로 지정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서, 왜군에 맞서 싸우다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충신 강위구, 그의 아들 강봉령은 의병으로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전사한 효자, 며느리 남평문씨는 남편의 삼우제를 마친 후 일주일만에 자결하여 열녀로 추앙을 받게 되어 1858년(철종9년 무오년) 나라에서 진주강씨 삼강문(晉州姜氏 三綱門)이라는 정문(旌門)을 받아 건립한 문이다. 임진왜란 ..

문화재 탐방 2023.12.25

전남 영암. 함양박씨. 정려각(旌閭閣)

함양박씨. 정려각(旌閭閣) *소재지: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 494 (마당바우로 114-7) 함양박씨(咸陽朴氏)는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의 후손으로 문규원(文奎源)의 처(妻)가 되어 정성껏 시부모를 봉양하고 종인(宗人)들의 모범이 되었다. 1854년(철종 5)에 박씨가 나주의 친정에 가 있을 때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자, 박씨는 남편의 뒤를 따라 자결을 꾀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슬픔을 참고 정성껏 3년 상을 치렀다. 그 후 목욕재계하고 9일 동안 단식한 끝에 절명하였다. 당시 순상(巡相)이던 서상정(徐相鼎)이 조정에 보고하여 1871년(고종 8)에 나라에서 정려하였다. - 영암문화원 - 함양박씨 정려각(咸陽朴氏 旌閭閣) 함양박씨 정려각(咸陽朴氏 旌閭閣) "증 통정대부 호조참의 남평 문공 ..

발길을 따라 2023.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