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상진(傷官傷盡)
現 명리학계(?)에서 회자되는 상관상진(傷官傷盡)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한데 살펴보니 크게 2가지로 분류가 되고 있습니다.
첫째: 傷官이 太過한 상태에서 한 點의 官星도 없거나
혹 있더라도 미미하여 傷官에 의해 이미 官이 파괴된 것입니다.
凶한 傷官이지만 도리어 傷官을 살리고 官을 없애버리는 것으로써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傷官의 凶意를 제공하는 빌미를 아예 제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면 傷官이 財星으로 흐르겠지요.
둘째: 凶한 傷官을 剋함으로써 傷官을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것을 일컫습니다.
이것은 印綬로써 傷官을 剋하여 傷官을 아예 발도 못 붙이게 만들어 버리자는 것인 모양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석연치 않아 보입니다.
印綬가 傷官을 剋하는 구조로서는 이미 상관패인(傷官佩印)이 있는데 별도로 傷官傷盡이라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또, 傷官을 傷盡해야 되는 이유를 들면서 반드시 傷官은 傷盡시켜야 한다고 강조도 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상관상진(傷官傷盡)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글입니다.
상관(傷官)을 상진(傷盡)시키는 이유는 2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官을 剋하여 官을 傷하게 하므로 그대로 두었다가는 장차 어떠한 禍가 돌아올지 몰라 항상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官은 나를 관제(管制)하는 官으로써 市. 郡之官인데 하나의 民이 官을 剋하고 어찌 平安 할 수 있겠는가. 고로 傷官을 傷盡시켜야 되며,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傷官은 내가 生하여 주는 자리이므로 내 氣運이 洩氣되어 도기(盜氣)가 되므로 制御시켜 자신의 氣를 補하자는 뜻에서이다.
위의 글귀는 傷官을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制하여야 한다는 필요성의 觀點에서 볼 때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傷官傷盡이라고 하는 觀點에서 이유는 아니라고 봅니다.
결론을 이야기 하자면
傷官傷盡이라고 하는 것은 傷官이 官을 보지 않고 財星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的確하다고 생각입니다.
印綬 등으로써 傷官을 剋하는 觀點이 아니라 傷官을 살려서 도리어 財星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 傷官傷盡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왜 상관생재(傷官生財)라고 하지 않고 傷官傷盡이라고 하였나 하면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만 어쨌든 古書 등에서 傷官傷盡이라고 표현하고 있네요.
삼명통회 論 傷官篇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傷官雖凶 乃我所生 自家之物 傷盡能生財 財旺則能生官 造化展輔有情
如月令在償官 四柱作合結局 皆在像位 無衝無破 不見一點官星 謂之傷盡
又有月支傷官 時上傷官 四柱無官星 亦謂傷盡
更身旺財旺或印旺 名標金榜 一品貴人
傷官은 비록 凶하다 하나 내가 生하는 物이다.
傷盡이 되면 능히 財를 生하고 財가 旺하면 또 능히 官을 生한다.
이러면 有情한 것이 된다.
가령 月令이 傷官이고 四柱에 傷官으로 局을 이루고 沖하거나 破하지 않으며
一點의 官星을 보이지 않으면 傷盡이 되며,
또 月支와 時에서 傷官이 있고 官星이 없어도 역시 傷盡이 된다.
자신이 旺하고, 財 역시 旺하거나 印星이 旺하면 궁전에 자기 이름을 올릴 정도로
일품귀인이 된다.
* 印星이 旺하다고 하는 것은 印星이 身을 旺하게 하는 조건이지
印星이 傷官을 剋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
坤命.
庚 丁 壬 癸
戌 未 戌 巳 정기생(正氣生)
이 命造가 현재 未婚이며 대학교수 職位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볼 때
아마도 傷官傷盡의 吉兆에 의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 청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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