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봉서원(胄峰書院)
강진군 향토문화유산 제5호
(2004.11.01)
*소재지: 전남 강진군 옴천면 장강로 1785-3 (영산리 381-16)
주봉서원(胄峰書院)은 옴천면 영산리 계원마을에 있다. 조선시대 암행어사를 지낸 정치가요 문장가인 계음(溪陰) 조팽년(趙彭年, 1549∼1612) 선생과 정조 때 성균관 교수를 지냈던 덕림(德林) 조규운(趙奎運, 1725∼1800) 선생을 제향하고 있다.
주봉서원은 1624년(인조 2년) 도내 유림들이 주봉산 아래에 있는 기좌리 좌척마을에 세웠었으나 1868년 서원 훼철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유림들의 발의로 1965년 다시 터전을 마련하게 됐다.
옴천면 황곡에서 태어난 조팽년 선생은 1593년 임진왜란 때 암행어사로 지방을 순찰하던 중 상소를 올려 억울한 누명을 쓴 이순신을 장군으로 다시 등용케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조팽년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런 저런 모함에 휩싸여 백의종군하고 있을 때 임금의 명을 받고 암행어사가 되어 전장으로 내려갔다. 선생의 임무는 이순신을 제거해야 할지 아니면 중용해야 할지 최종 결정을 하기 위해 현장을 탐문해서 그 결과를 조정에 올리는 것이었다.
선생은 이순신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남해로 몰래 내려와 여러 정황을 통해 이순신의 인품과 장군으로서의 역량을 조사했다.
공은 이순신의 됨됨이를 제대로 살핀 후 “능력이 크고 일을 잘 처리하는 재간과 국량(局量)이 있다”고 조정에 보고했다. 평생 이순신을 아끼고 지원했다는 서애 유성룡도 공의 보고를 근거로 임금께 이순신의 중용을 청했고 이순신은 다시 전장의 지도자가 되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 주역을 담당하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조팽년공이 없었다면 성웅 이순신 장군도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분이라 할 수 있다.
- 웹사이트-
주봉서원 안내판.
주봉서원 앞에 세워진 석비 3기.
주봉서원.
주봉서원 현판.
훼손된 마루.
주봉사(胄峰祠) 삼문.
주봉사(胄峰祠)
주봉서원 입구에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2017.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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