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사 5

전남 강진. 주자갈필 목판. 남강사(南康祠) 전남 유형문화재 제154호.

강진 남강서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4호.(1987.06.01)    *소재지: 전남 강진군 강진읍 향교로 128-2 (교촌리)    남강사 주자갈필목판 안내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4호.(1987.06.01)  남강사 주자갈필목판은 강진향교에서 200여m 떨어진 남강사 내의 어필각에 소장되어 있는 목판이다. 본래 남강사는 우암 송시열(1607∼1689)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방 유생들에 의해 순조 3년(1803)에 창건된 건물이다.  우암이 기사환국과 관련하여 제주로 유배되어 가던 중 폭풍으로 인하여 강진 성자포(지금의 남포)에서 출발하지 못하고 인접한 백련사에 잠시 머물면서 유생들에게 강론을 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백련사에 영당(남강사의 전신)을 건립한 것이 오늘날의 남강서원이 건립된 배..

문화재 탐방 2024.08.09

전남 강진. 옥련사(玉蓮寺) 전남 지방유형문화재 제188호.

옥련사 대웅전과 오층석탑.  ▶주소: 전남 강진군 강진읍 옥련사길 86 (덕남리 484-24)  옥련사(玉蓮寺)는 전남 강진군 강진읍 덕남리 기룡 마을 뒤 만덕산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절로서 1951년 11월 능화(能華)스님과 인근 신도들의 노력으로 백련사(白蓮寺)의 소속이던 송광암(松廣庵) 터에 초가집 두 칸을 지어 강진 대구면 용운리에 있는 정수사(淨水寺)에서 목조여래좌상 1구를 옮겨와 봉안하면서부터 법등을 밝혀오고 있다. 옥련사는 근래에 조성된 사찰이어서 많은 유물은 없는 사찰이지만 그러나 옥련사를 처음 개창하면서 정수사에서 옮겨온 목조불상에서 1991년 5월 복장이 확인되었다. 복장을 확인한 결과 1684년 명의 불상조상기문(佛像造像記文)과 여러 권의 경전류 등을 비롯하여 복장물이 나왔다.  ..

한국의 절집 2024.07.22

전남 강진. 다산초당(茶山草堂)

정다산 유적 안내판.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하면서 실학을 집성한 유적지(사적 제107호)    *소재지: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산103-3.   다산초당으로 가는 오솔길.   해남윤씨 합장 묘.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길목에 봉분을 보게 되는데 과거에는 볼 겨를없이 지나갔는지 묘역을 본 기억이 희미하다.    다산 서암(茶山 西菴)   다산초당(茶山草堂)   다산초당 안내문.   다산 정약용 선생 유상(茶山 丁若鏞 先生 遺像)   정석(丁石)다산이 직접 새겼다고 전해지는 정석은 다산초당의 제1경이다. 아무런 수식도 없이 자신의 성(姓)인 정(丁)자만 따서 새겨 넣는 것으로 다산의 군더더기 없는 성품을 그대로 보여준다.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연못 한 가운데 돌을 쌓아 만든 산이다. 다산은 원래 있..

문화재 탐방 2024.06.24

전남 강진. 전남 유형문화재 제154호. 남강서원(南康書院)

강진 남강서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4호. (1987.06.01) *주소: 전남 강진군 강진읍 향교로 128-2 (교촌리) 남강사 주자갈필목판 안내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54호. (1987.06.01) 강진향교에서 200여m 떨어진 남강사 내의 어필각에 소장되어 있는 목판이다. 본래 남강사는 우암 송시열(1607∼1689)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방 유생들에 의해 순조 3년(1803)에 창건된 건물이다. 우암이 기사환국과 관련하여 제주로 유배되어 가던 중 폭풍으로 인하여 강진 성자포(지금의 남포)에서 출발하지 못하고 인접한 백련사에 잠시 머물면서 유생들에게 강론을 행하였다. 이로 인하여 백련사에 영당(남강사의 전신)을 건립한 것이 오늘날의 남강서원이 건립된 배경이 되었다. 현재 보존된 목판은 원래..

문화재 탐방 2023.01.20

전남 강진. 다산초당(茶山草堂)

정다산 유적 안내판.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하면서 실학을 집성한 유적지(사적 제107호) *주소: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산103-3.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병조참지, 형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처음에는 강진읍 동문밖 주막과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 집 등에서 8년을 보낸 후 1808년 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해배되던 1818년 9월까지 10여년 동안을 다산초당에서 생활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을 하였으며, 다산의 위대한 업적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다산초당은 노후로 붕괴되었던 것을 다산유적보존회에서 ..

발길을 따라 2022.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