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전남 강진. 양건당 충효사적비 & 의마총. 강진군 향토문화유산 제20호.

백산. 2024. 8. 21. 05:00

양건당 황대중 충효사적비.

 

주변 환경이 볼상 사납게 되어있다.

 

 

▶소재지: 전남 강진군 작천면 용상리 436-5.

 

 

장수황씨 양건당공 휘대중충효사적비.

長水黃氏 兩蹇堂公 諱大中忠孝史蹟碑.

 

 

양건당(兩蹇堂) 황대중(黃大中, 1551~1597)은 양정공 황사효(黃事孝)의 증손이며, 황윤정(黃允禎)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효건(孝蹇)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성장해서는 참봉에 천거되었다.

 

임진왜란 때 장사로 뽑혀 전투에 참여했으며, 병사 황진(黃進, 1550~1593)을 따라 진주성 전투에 참가했다.

 

1593년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 당시 성이 함락될 때 성을 빠져나온 그는 삼도 수군통제사 이순신 휘하에 들어가 활약했다. 이순신의 진중에서 활약하던 중 일본군의 총탄이 오른쪽 다리를 관통하여 다리 일부를 절개했다.

 

그는 1597년 8월 16일 병마절도사 이복남(李福男)과 더불어 남원읍성을 사수하다가 전사했다.

 

 

- 웹사이트 -

 

 

 

 

양건당 황대중 충효 추모비 비문.

 

 

효도도 어렵고 충성도 어렵거늘 하물며 충효를 쌍전함에는 얼마나 어려우랴. 우리 중조(中祖) 양건당 부군(府君)은 어려운 충효대도를 위하여 신명을 아낌없이 바쳤으니 참으로 민족 천재의 거울이요 자손 백세의 자랑이다. 부군의 휘는 대중이시오 자는 정숙(正淑)이시니 조야에서 이름 높으신 이조(李朝) 현상(賢相) 익성공 방촌 휘 희(喜)의 5대손이며 부위(副尉) 윤정(允禎)의 2남으로 명종 신해 단기 3884년에 백동 경저(栢洞京邸)에서 출생하시었다. 덕성에 학문을 겸하니 사림의 추앙이 높았다.

 

일즉 자당 진주 강씨께서 중병이 들어 백약이 무효이매 심히 근심한 나머지 자신의 고육(股肉)을 오려 약(藥)하여 바치시니 창천이 감동하여 친환(親患)은 치유되었으니 이로 인하여 좌편 다리를 절게 되니 세인은 이르되 효건(孝蹇)이라 칭하였다.

 

효명(孝名)이 주달되어 정릉 참봉으로 제수되었으나 노친을 봉양키 위하여 부임을 사양하였다.

임진년에 왜적이 침입하여 충분(忠憤)을 못 이기어 자진 출전하여 도처에서 수훈을 세웠으며 유명한 한산도전의 이충무공진에서 선두에서 지휘타가 적탄에 맞아 우편 다리를 절게 되니 세인은 이르되 충건(忠蹇)이라 칭하였다. 오호라 정유재란에는 불구의 몸으로 출전하여 포위 당한 남원 고성(孤城)에서 적을 무찌르다가 중과부적으로 장렬하게 전사하니 때는 정유 8월 16일이니 향년 47세였다.

 

조정에서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 수찬관을 증하였다.
천고에 아름다운 양건의 당호는 세인이 부군의 충효를 감탄하는 애칭의 아호이다. 성산의 선영에는 사시에 향풍이 감돌고 구암(龜岩)의 고묘(古廟)에는 만년 창태가 아롱져있다. 우리들은 사백 성상 충효의 청전(靑氈)을 이어온 고가(古家)의 후예인지라 거룩한 조업을 각골명심하여 충효의 가성(家聲)을 천만대에 보전하리다.

 

 

단기 4307년 8월, 13대손 의권 근배.

 

 

- 웹사이트 -

 

 

 

 

충무공 이순신 조제문

(忠武公 李舜臣 弔祭文)

 

 

척동마을 입로석.

 

척동마을 입로석이 세워진 바로 옆에 '양건당 충효사적비'와 '의마총'이 자리하고 있다.

 

 

의마총 안내판.

 

의마총 안내판은 척동마을 입로석 바로 옆에 있으며 의마총은 표지판 뒤로 들판에 자리하고 있다.

양건당 충효사적비에서 바라본 의마총이 들녁에 자리하고 있다.

 

 

강진군 향토문화유산 제20호.
(2004년 11월 1일)

 

 

양건당 황대중 장군의 의마총(義馬塚)

 

강진군 작천면 용상리 204-5에 자리하고 있는 의마총(義馬塚)은 2004년 11월 1일.
향토문화유산 제20호로 지정되었다.

 

황대중 장군은 젊은 시절 운명처럼 우연히 집에 찾아들어 온 말(馬)과 함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전쟁터를 누비다가, 1597년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하고 만다. 주인이 죽자 곁을 떠나지 않고 우는 말(馬)의 등에 김완 장군이 시신을 수습해 태웠고, 그 말(馬)은 강진까지 쉬지 않고 내달렸다. 고향마을에 도착한 말(馬)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장례가 끝난 지 3일 만에 죽었다고 전한다. 그 뒤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장군의 묘지 가까운 곳에 말(馬) 무덤을 만들어 충정을 기리고 있다.

 

 

- 웹사이트 -

 

 

들판 가운데 조성된 의마총.

 

 

의마총.

 

 

양건당 애마지총 표지석.

 

 

의마총과 애마석상.

 

 

양건당이 애마에 승마한 형상.

 

 

 

애마석상 건립비.

 

2007년 5월 15일 근수.

 

 

 

다녀온 날: 2021.03.14.